얼마나 알고 계세요? 육보딸기 이야기
딸기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어떤 품종을 먹느냐에 따라 그 맛과 식감은 크게 달라집니다. 요즘에는 설향, 금실, 매향, 죽향처럼 고유의 특성과 이름을 가진 딸기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딸기 품종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품종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새로운 품종이 등장하면서 주류를 바꾸기도 하지요.
오늘 소개해 드릴 육보딸기는 바로 그런 품종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국내 딸기 시장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는, 그러나 한때는 ‘딸기 하면 육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품종이었습니다.
지금은 설향 품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 이전 세대 딸기를 이야기할 때 육보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육보딸기의 유래부터, 왜 점점 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지까지, 딸기 시장의 흐름 속에서 육보딸기를 조명해 보려 합니다.
1. 육보딸기의 유래와 도입
육보딸기는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레드펄(Red Pearl)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육보’라는 이름은 일본어 ‘ろくぼ(Rokubo)’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것인데, 실제 일본에서 재배되던 이름은 아니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정착된 명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딸기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일본에서 도입된 두 품종이 시장을 양분했습니다. 하나는 장희(아키히메), 또 하나가 바로 육보(레드펄)입니다. 이 두 품종은 당시 딸기의 맛과 당도, 재배 안정성 등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았고,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죠.
특히 육보는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으며, 산미가 적은 특성으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과육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수분감이 좋아 ‘촉촉한 딸기’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2. 설향의 등장과 육보의 후퇴
육보딸기가 점점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설향 품종의 등장입니다. 설향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개발한 국산 품종으로, 육보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출하 시기가 빠르고, 수확 기간이 길며, 병해에 강하고, 수량성이 좋다는 점이 농가에 큰 메리트였습니다.
딸기의 가격은 단순히 품질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언제 출하되느냐, 얼마나 오래 수확할 수 있느냐, 얼마나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느냐에 따라 농가의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수확 기간이 짧고 고온기에 약한 육보보다는 설향으로 농가가 재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게다가 설향은 대형 유통망에서도 선호하는 품종이었습니다. 규격화가 잘 되어 있고, 경도와 유통 안정성이 좋아 대형마트, 온라인몰, 백화점 등 다양한 유통 경로에 적합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설향은 점점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육보는 일부 농가와 특정 유통망에서만 간간이 보이는 품종이 되어버렸습니다.
3. 육보딸기의 특징과 출하 시기
육보딸기는 2월 이후부터 출하되는 반촉성 품종입니다.
초촉성 품종은 11월, 촉성은 12월, 반촉성은 2월 이후 출하되며, 육보는 주로 2월 말~4월 초 사이에 시장에 나옵니다. 이 시기는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딸기 수요는 줄어드는 시점이기 때문에 시세가 설향만큼 형성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육보는 고온기 재배에 취약합니다. 쉽게 무르고, 저장성이 낮고, 유통 중 손상이 발생하기 쉬워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취급이 까다로운 품종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육보만의 맛과 향, 과즙의 풍부함은 여전히 많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과육이 부드럽고 단맛이 뛰어나며, 산미가 적어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 없는 맛입니다. 단점이라면 껍질이 얇고 쉽게 벗겨진다는 점, 그리고 농가 입장에서는 수확 기간이 짧고 수량성이 낮다는 점이겠지만, 그만큼 프리미엄 딸기 시장에서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4.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요?
현재 육보딸기의 재배 면적은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일부 지역의 전통시장, 프리미엄 온라인몰, 그리고 논산, 진주, 창원 등 특정 산지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일반 유통망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설향이나 금실 같은 품종보다 효율이 낮기 때문에 생산이 계속 줄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육보딸기를 완전히 잊을 필요는 없습니다. 매년 2월 말~3월 초 사이, 일부 온라인몰이나 산지 직송을 통해 육보를 판매하는 농가들이 있으며, 이 시기에만 한정된 양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미리 알아두면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않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고급 딸기 품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육보를 다시 찾는 소비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맛에 민감한 소비자층이 늘어나고, 품종의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육보의 가치는 다시 재조명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딸기 시장은 트렌드와 환경 변화에 따라 꾸준히 진화해 왔습니다.
육보딸기는 한때 시장을 이끌던 주류 품종이었지만, 설향의 등장과 함께 점점 뒤로 밀려나 지금은 한정된 수요만을 충족하는 품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맛과 향을 기억하는 소비자들에게는 특별한 딸기이고, 한정된 시기에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즘은 설향, 금실, 매향, 죽향, 킹스베리 등 다양한 프리미엄 딸기들이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사라져가는 육보딸기처럼,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품종도 한때는 딸기의 중심이었다는 사실, 이 또한 우리나라 딸기 산업의 중요한 역사입니다.
혹시 올해 봄, 육보딸기를 볼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예전 그 맛을 떠올리며 맛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라지는 품종이지만, 기억해야 할 딸기. 바로 육보입니다.